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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권위주의


광복절(8/15) 생각:

코로나19는 여러모로 우리의 세상을 바꾸고 있다. 변화 중 하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다. "줌, 하이브리드, 비대면, 큐알코드, 비말..." 같은 단어들이 일상에 사용되며 이 단어들이 없이는 일상도 소통도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추가로 이제 메디컬 권위주의(Medical Authoritarianism)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가 되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단어다. (권위주의는 기득권의 권위 그 자체에 의혹을 갖거나 혹은 반항하는 것은 모독이며 죄악이라고 하는 사고방식 또는 행동양식을 말한다. 독재정치나 종교에서 흔히 발견된다.)

현재 전세계는 메디컬 권위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메디컬 권위주위란 메디컬 즉 건강을 이유로 국가나 사회의 기득권이 권위주의를 제도화 하여 시민을 다스리는 상황을 말한다. 메디컬 권위주의는 사회와 개인의 건강을 빌미삼아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고 통제한다. 아이러니하게 시민은 자신들의 건강에 대한 염려로 평소에 포기하지 않으려던 자유와 권리를 스스로 반납한다. 메디컬 공포의 결과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누군가가 독립과 자유를 위해 생명 바쳐 싸운 피값의 결과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이 시점에 인류는 스스로 통제받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다니 안타깝다. 인간의 존엄성은 건강을 잃어도 유지될 수 있으나 자유를 잃으면 유지할 수 없는 것을 망각한 듯 하다.

이제 백신여권이 없이는 외국으로 가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대중교통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으로 사회는 가고 있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대유행에 지친 시민들은 평소같으면 위험하다고 거부할 (임상실험이 끝나지 않아 긴급승인만 받은) 백신과 백신여권을 통해서라도 "자유"롭게 움직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 꿈은 허상이다. 이미 우리는 공공장소를 사용할 때 큐알코드로 "상부"에 보고하고 있다. 그 정보가 안전하게 보관되고 나중에 버려진다 하더라도 정부는 필요하다면 감염경로 파악이라는 이유로 그 정보를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권한"을 누리고 있다. 더 나가서 이미 우리는 정부가 정하는 시간에 따라 모이는 숫자적 제한을 받아드리고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통제와 제한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수긍하고 있다. 어째서? 바이러스가 확산되면 안되니까. 건강을 지켜야 하니까. 이렇듯 우리는 메디컬 권위주의 군주들에게 길들여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유를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는 수많은 영웅들의 피로 쓰여진 것 아닌가?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는 억울한 죽음을 당하면서 마지막으로 외친다. "자유!" "Freedom!" --Sir William Wallace, 1270-1305

미국 독립전쟁 당시 패트릭 헨리는 명언을 남겼다.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Patrick Henry, 1736-1799

자유가 얼마가 소중한지 잃은 후에라도 깨닫는다면 그나마 희망이 있겠지만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깨달음이 없다면 그 비극의 끝은 절망일 것이다.

우리가 감명깊게 체험한 빅토르 위고의 작품, 《레 미제라블》(프랑스어: Les Misérables)의 뮤지컬에 나오는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로 위로삼는 저녁에... 그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며! 마라나타! 호산나!

Comments


Abstract Cartoon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우리 마음 쓰기에 달렸죠.

 

보내드릴게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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