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8-49장

48:36-47
36절 이하는 모압 심판을 다루는 마지막 단락입니다. 선지자는 모압의 심판을 선포하기 위해 앞에 이미 언급한 것을 반복합니다. 선지자가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것은 강조이기도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 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 외에도 다른 선지자들을 통해서 회개를 촉구하셨고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사야가 선포한 내용이 예레미야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아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이자 우리 인간의 역사도 성경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성경과 함께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알되 현재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란-이스라엘 전쟁, 일본 지진과 전 세계적 재앙에 대하여 무관하게 성경을 읽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는 모압에 대한 심판 선포 마지막에 구원을 말합니다. 애굽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마지막에 구원을 선포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즉 심판과 구원은 함께 일어납니다. 이 사실은 십자가에서 뚜렷이 보여집니다.
49:1-6
49장은 암몬에 대한 심판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암몬과 모압은 형제입니다. 그 당시 부와 성공의 상징이었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간신히 피한 롯의 두 딸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마음으로 아버지 롯을 통해 임신을 하는 끔찍한 일을 벌인 결과로 생긴 두 민족입니다. 아브라함과 친척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그 지역의 신인 밀곰 혹은 몰렉을 섬겼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결국 심판을 받습니다.
49:7-22
본문은 에돔에 대한 심판입니다. 창세기 25장에 에돔은 처음 소개됩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자손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이니까 이스라엘과 에돔은 정말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런데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쌍둥이 야곱과 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다른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언약을 훔쳐서라도 갖고 싶어했고 에서는 언약은 나중에 생각해 볼 일이었습니다.
에돔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에돔은 이스라엘을 칼로 쫓으며 쳤다고 말할 정도입니다(암 1:11). 에돔은 에서의 후예답게 거친 사막과 산악 지대에 거주하며 안전을 도모했습니다. 독수리의 보금자리와 같다고 비유합니다. 그래서 비교적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고 안정과 부유함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결국 에돔도 심판을 받고 영원히 황폐될 것이라 선언합니다.
월요일 아침부터 또 심판에 대한 말씀을 나눠서 송구합니다. 저도 어서 예레미야서 묵상이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아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픔을 고치신다." 뭐. 그런 내용으로만 묵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생이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이 더위에 수 많은 사람들은 올림픽 경기를 보며 환호도 하고, 실망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올림픽 경기를 즐길 수 있는 관중은 인류의 극 소수 부유층이기는 합니다. 올림픽에서 어느 나라가 어떤 극적인 장면을 만들었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인류의 대부분입니다. 생수가 없어서 구정물을 길어 마셔야 하는 사람들, 식량이 없어서 종이 상자를 찢어서 죽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까운 우리 나라에도 하루 몇 천원을 벌고자 뙤약볕에도 폐지를 모으는 노인들도 아직도 많습니다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우리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시간과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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