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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왜 굳이 침을 뱉으실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시각 장애인을 고치는 내용입니다.

이 맹인은 태어날 때 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눈이 먼 것은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친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으로 기록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기적으로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지만 요한이 기록에 남기고자 했던 기사와 이적은 우리가 심도있게 묵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생기는 궁금증은 적어도 '죄란 무엇일까?'와 '예수님은 왜 침 뱉으셨을까?'입니다. 자. 함께 본문을 보실까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 vs 성경이 말씀하는 죄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죠. 가볍게는 '심는대로 거둔다'가 되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지은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한 일을 하면 좋은 보답을 받게 된다는 생각인데 흔히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알지만 사실은 모든 종교 아니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과응보의 개념은 종교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죄와 벌을 설명하는 생각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요즘은 우리가 때로는 우스개 소리로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니 이야기를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조상의 잘못이 후손과 연결되는 것을 나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도 부모의 죄로 자손이 벌을 받는 것(출 34:7)과 자신의 잘못으로 벌을 받는 것 (렘 31:29-30; 겔 18:2)에 대해 언급을 하니 우리가 죄와 벌에 대해서 혼동을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이 말씀하는 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질문합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누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부모입니까?’ 이 신학적 질문은 사람의 고통을 죄라는 것과 연결시킨 오래된 생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도 죄에 대해 언급합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성경에도 부모의 잘못이 후손에게 연결된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맹인을 보면서 이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모 죄든 자기 죄든, 제자들은 그의 상태를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나 너무 단순하고 부분적으로 생각할 때 심각한 오류를 범합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 맹인의 상태를 자기 자신이나 부모의 죄가 아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3절). 오해는 마십시다. 이들이 죄인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들의 상태가 개별적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부모나 이 사람의 개별적 죄가 궁금했습니다. 제자들은 잘하고 잘못하는 것으로 의와 죄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윤리도덕적 시각으로 '죄'를 보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즉, '죄를 지었으니 그 결과로 아들이 아니면 자신이 장님이 되었다'라는 단순 인과응보의 공식을 씁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눈먼 행동이다. 인류를 대표하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대적하여 죄가 이 세상에 임금으로 들어와서 이 세상은 망가졌고, 우리 눈이 나빠지고, 심하게는 장님이 되는 것은 죄로 부패하고 망가진 세상의 모습"이라고 설명합니다. 단순하지 않아서 우리가 곱씹어 생각을 해야되는 답을 성경은 제시하죠.

성경은 '죄'를 단순히 윤리도덕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눈 먼 것'으로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개인이나 가정의 윤리도덕의 결함으로 생각하는 우리에게 훨씬 더 역사적으로 그리고 더 우주적으로 눈을 들어 보도록 인도하십니다. 제자들은 ‘누구’의 죄인가를 묻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각으로는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창조 후, 원죄로 말미암아 부패한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노출의 차이는 있지만 망가진 현실의 차이는 없습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는 말씀입니다 (롬 3:10-12). 즉 맹인의 눈이 망가진 것은 죄가 왕노릇 하는 이 세상이 망가졌기 때문이니 '맹인은 죄인이고 맹인이 아닌 사람은 의인일 것이다'라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아마 자신들이 완벽하거나 완전하지는 않아도 맹인처럼 '죄인'은 아닐 것이라고 자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부심은 자의로 그들을 자만하게 했을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그 상태에 머문다면 그것이 영적으로 눈이 먼 상태임을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아담으로 온 인류는 다 범죄한 것이고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 죄의 결과임에 개인의 죄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맹인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죄악 세상에서 진리를 볼 수 있을까 질문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에 나쁜 사람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혹시 우리는 자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제자들이 맹인과 비교해서 자신들을 더 의롭다 생각했던 그 어리석음에서 우리를 고쳐주시길 간구합니다.

침뱉는 예수님

요한복음에 나온 세 가지 치유 사건에서 4장에 기록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것은 예수님을 먼저 찾아와 요청한 경우인데 5장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친 사건처럼 9장에서도 당사자의 요청 없이 예수님은 맹인의 눈을 뜨게하십니다. 사실 신하의 아들 경우도 예수님은 신하의 요청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그의 가정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요한은 이렇게 가나안 성도와 디아스포라 성도를 찾아가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요한복음이 기록한 모든 치유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맹인의 경우는 예수님이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그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야 합니다. 비말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우리에게 "침을 뱉어"라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침을 뱉으셨을까요?

예수님은 신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마술적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침을 뱉으셨을까요? 맹인에게는 예수님의 터치가 필요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맹인의 눈을 어루만져준 사람은 그의 평생에 몇 명이나 될까요? 그 당시 '죄인'이란 정결하지 못한, 부패한 낙오자들입니다. 이런 루저들에게 종교는 가혹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정죄하고 세상은 낙오자로 판단한 자들에게 오늘도 찾아오시는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된 이 사람을 찾아가셨습니다. 물론 그냥 말씀으로 선포하실 능력이 예수님에게는 있지만 맹인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손길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너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나타내려 하기 위함이다" 말씀하십니다. 그는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어야 했고 오고 가는 길에 예수님의 말씀을 곱씹어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맹인은 자기 상황을 종교에서 말하는 죄와 연결시켜 신에게 저주받은 인생으로만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구부러지고, 망가지고, 부패한 이 세상에서 희망없는 자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요한은 그런 예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기록한 맹인은 선천적 맹인입니다. 평생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치유를 포기한 듯 그는 예수를 찾을 생각도 안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를 찾아가십니다. 맹인은 예수의 말씀대로 눈을 뜹니다. 아니 빛을 봅니다. 진리이신 예수의 말씀이 선포되니 가망없는 이 맹인도 어둠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습니다. 여러분 가족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사셔서 믿지 않는 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을 통해 빛을 보는 날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맹인은 예수의 정체도 모르고 예수에 대한 신학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예수가 자신에게 하신 일을 말함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는 분이며, 메시아에게 기대되던 일을 하는 분인 것을 알게 합니다. 이것이 가스펠인(人)의 삶입니다. 우리가 먼저 눈을 뜬 후에 빛 가운데서 빛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해가 밝아옵니다. 빛되신 예수님을 밝히 보는 눈을 허락하시길 간구하며 이만 줄입니다.

Comments


Abstract Cartoon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우리 마음 쓰기에 달렸죠.

 

보내드릴게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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