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가장 귀한 선물 (예레미야 32장)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어제 본문에서는 심판의 확실함으로 응답하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구원의 약속으로 응답하십니다.
36-42절,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구원은 '심판'을 대신하여 교체하는 구원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며,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이란 시간을 지낸 후 받는 구원을 말합니다.
죄를 심판하지 않으시면 우리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죄를 심판하실 때 죄인도 함게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만일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죄와 함께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이 70년 포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죄의 댓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은 죄의 댓가를 대시 치루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70년의 포로 생활이 없으면 회복도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십자가가 없으면 구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용서를 베푸시는 것은 예수를 공의의 심판으로 다루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은 '은혜'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는 우리가 갚을 수 없는, 지불할 수 없는, 우리의 노력이나 희생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갚을 수 없는 것이고, 우리가 지불할 수 없는 것이고, 우리의 희생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가 공짜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은혜는 거저가 아닙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솔직히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 것인가는 우리가 얼마나 이 은혜가 귀중한지를 깨닫는 만큼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깨닫는 그 은혜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하는 삶을 살게 되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귀중한지 날마다 새롭게 깨달으며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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